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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chrichten.fr · July 26, 2026

논평: 새로운 연좌제 – 혹은 죄와 처벌이 갑자기 세습될 때

(Mit Hilfe von KI erstellte Illustration).

때로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불편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연좌제.

역사의 냄새가 나고, 어두운 시대가 떠오르며, 누가 무엇을 했는지 더는 묻지 않고 오직 누가 누구와 연관되어 있는지만 따지는 국가를 연상시키는 개념이다. 법치 민주주의에서는 원래 가정법으로만 접할 법한 말이다. 경고로서.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런데도 이제 다시 이것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에는 역사책이 아니라 법정에서다. 유물이 아니라 현대 안보 정책의 수단으로서다. 아들이 마약을 거래하면, 어머니는 집을 잃는다. 형제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가족은 문밖으로 내몰린다. 이토록 간단하다. 이토록 효율적이다. 이토록 끔찍하다.

물론 그 논리는 일요일 정장처럼 말쑥하다. 질서와 안전, 이웃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집 아래 현관 복도에서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거래가 이루어져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국가는, 그들은 말한다,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멋진 말이다. 힘과 명확함, 단호한 조치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말에는 이면이 있다. 절제 없는 행동력은 곧 못만 보게 되는 망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갑자기 가족들이 그 못이 된다.

거의 책임도 전염되는 것처럼 보인다. 식탁을 통해 퍼지는 질병처럼. 함께 사는 사람은 함께 책임진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법적으로 깔끔한가? 어쩌면. 도덕적으로는? 글쎄.

그렇다면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이상 아들에게 닿지 못하는 어머니는 공동 책임자로 규정된다. 이미 오래전에 포기한 아버지는 공공질서 교란자가 된다. 종종 스스로도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은 კიდევ 한 발짝 더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이를 예방이라고 부른다.

이쯤 되면 마음껏 냉소적으로 감탄해도 된다. 마침내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없애는 해결책이 나왔다. 마약상은 어쩌면 감옥에 가고, 그의 가족은 곧바로 거리로 내몰린다. 효율성이야말로 결국 시대의 요구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로부터 무엇이 따라오는가이다.

전단지 뿌리듯 죄책을 배분하기 시작하는 국가는 가장 중요한 덕목인 분별력을 잃는다. 가해자와 주변을, 책임과 무력함을 구분하지 않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불균형이 시작된다.

법은 집단 스포츠가 아니다.

법은 면밀히 살피고, 구분하고, 따져 보고, 의심하는 데서 살아 있다. 즉 “너희는 함께 속해 있으니 함께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누가 무엇을 했고, 누가 하지 않았는가를 묻는다.

그러므로 질문은 연좌제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만이 아니다.

진짜 질문은 법치국가가 과연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아니면 마약 거래와 싸우는 동안, 훨씬 더 소중한 무언가를 잃기 시작하는가이다.

자신만의 정의에 대한 생각을.

다니엘 이버스의 논평